[디지털타임스][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희미해진 단일민족 신화… `영토 통합`서 `평화 공존`으로 인식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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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담당자
등록일 :
2021-03-10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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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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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V4epyGWW2o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북방정책의 추진은 북한을 목표로 전개되는 안보정책과 통일정책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 갈등관계와 그것이 주는 제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안보정책은 현상의 유지를 목표로 하는 보수적 정책인 반면에 통일정책은 현상의 변경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두 정책 간에는 본질적 길항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현상을 유지하면서(평화와 번영) 동시에 변경하고자 하는(통일) 모순적 상황의 해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북방정책의 추진자들로 하여금 한반도를 벗어나 보다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목표(협력을 통한 세계 일등적 지위의 추구)를 추구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이라는 존재가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북한은 우리에게 형제인 동시에 적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이중적 성격을 갖는 북한의 존재는 수시로 우리 정부의 정책적 일관성과 선명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존재 자체가 우리 국가의 정체성과 국가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 형제로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적으로 물리칠 것인가? 이는 쉽게 답하기 힘든 문제이며, 따라서 북한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 핵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따른 부담과 두려움은 북한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제약요건으로 존재한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 국내여론의 향방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대북정책의 결정과정에 있어 남남갈등이 제약요인으로 작동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노태우 정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북한과의 관계는 부침을 거듭해 왔다. 이러한 관계의 부침에 북방정책의 추진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바 있는가? 필자의 견해로는 북방정책의 추진과 남북관계의 진전이 어떤 직접적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우리가 추진하는 북방정책의 성격이 남북관계의 진전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북방정책을 실현하고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 및 북한의 협조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는 북한과의 관계설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북방정책은 대북정책이기도 하지만, 대북정책이 북방정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우리 국가의 역량이 커지고 경제수준이 높아질수록 북방정책은 대북정책보다는 국가전략적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게 될 것이고, 이 경우 정책의 초점은 통일 보다는 북한의 협조 확보에 맞추어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는 우리에게 북한과 관련된 가장 근본적인 질문, 즉 "우리는 지금 통일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며 되뇌던 지난 반세기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통일은 매우 피상적이고 표피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통일에 대한 국민의 감정도 많이 변해서 오늘날의 젊은 세대 중에는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통일을 왜 해?"라고 반문하는 경우조차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정부와 민간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단 한순간도 통일을 포기한 적이 없지만,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통일이 맨 윗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한 예로서 어느 외국인 기자의 기억을 빌려보자. \'가디언\', \'더 타임즈\', \'워싱턴 타임스\' 등에서 한국과 북한 담당기자로 활약했던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 2018)은 그의 저서 \'한국, 한국인\'에서 "1989년 이후 한국정부는 북한을 합병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깨달았다."고 주장하면서, 1991년 초 당시 외무부차관보와 나눈 대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더 이상 통일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과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우리의 공식적 입장은 북한과의 민주적 통일이다. 통일 과정이 평화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점진적·단계적 프로세스가 바람직하다. 오래 걸릴수록 좋다. 나 개인적으로는 영원히 통일이 되지 않아도 무방하다." 1990년대 초반 이미 외국인 특파원과의 대화에서 (오프 더 레코드라는 전제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정부의 고위당국자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던 것이다.
비단 브린의 지적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해마다 진행되는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되었던 통일연구원의 통일예측시계 프로젝트, 그리고 빈번히 진행되는 통일에 관한 여론조사들은 우리 국민이 더 이상 통일을 간절한 목표로서 바라지 않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시계라는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가장 명시적으로 통일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를 시각화 해 보여주었던 통일예측시계(12시가 되면 통일이 달성되는 것으로 보았다)의 경우 2009년에는 4시 19분(델파이패널, 합의형)이었던 통일시각이 2016년에는 오히려 3시 31분으로 후퇴하였다. 통일연구원의 2020년 통일의식조사에서는 "남북한이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통일은 필요 없다."는 설문항에 대해 통일 보다 평화공존을 선택한 응답자가 54.9%를 기록함으로써 전체응답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평화공존을 통일보다 선호하며, 노령층에서만이 상대적으로 통일을 선호하는 성향이 발견된다.
그밖에도 "남북이 한민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하나의 국가를 이룰 필요는 없다."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가 아니더라도, 국민이 서로 왕래할 수 있고, 정치 경제적으로 협력한다면 그것도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설문항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조사 결과 전반적으로 한국 국민들은 통일이 국가에는 이익이 될지라도 개인에게는 별다른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이는 결국 통일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 직결된다.
이와 같은 변화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강력한 원인 중 하나로 인구 구조의 변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대북정책, 혹은 통일에 가장 크게 관심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집단은 누구일까? 여러 집단 중에서도 이산가족 혹은 실향민 집단이 가장 주요한 하나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소위 \'천만 이산가족\'의 존재는 언제나 대북·통일 정책에 강력한 족쇄로 작용하여 왔다. 그러나 이산가족 1세대 생존자 수는 갈수록 줄어들어 2021년 현재 통일부에 등록된 13만여명 중 8만여명이 세상을 떠나고 생존자도 절반 이상이 80세 이상 고령이다. 70세 이상으로 계산하면 전체의 86.2%에 달한다.
KBS가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방영했던 것이 1983년의 일이다.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방송기간 138일, 방송시간 453시간 45분 동안 진행됐던 생방송은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고,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까지 하였지만, 지금은 "기록만 남았을 뿐 인걸은 간 데 없다." 이산의 아픔에 시달리며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결국 통일을 바라는 국민의 숫자가 절대적 의미에서나 상대적 의미에서 모두 줄어들었고, 이는 정치지도자 집단이 더 이상 통일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계산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분단 1세대와 통일에 대한 감정이 전혀 다른 분단 2세대 및 3세대를 감안할 때, 정부의 입장에서는 대북관계에서 더 이상 \'통일\'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더불어 지나간 오랜 시간 동안 (가끔씩은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하였지만) 지속되어온 북한과의 대립적이며 적대적인 관계, 북의 핵무기 개발 및 완성, 북한의 세습 독재 체제에 대한 혐오, 통일에 수반되는 비용에 대한 부담감 등의 요인들이 분단으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이 땅에 태어난 우리 국가의 새로운 구성원들로 하여금 통일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갖도록 함으로써 북에 대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통일에 대한 부정적 견해의 확산은 우리가 그리는 통일의 모습 및 당위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그리는 통일은 무엇인가? 통일이란 반드시 영토적 통합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하는가? \'단일민족의 신화\'는 통일의 당위성으로서 적합한 것인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답할 필요가 있다.
어떤 면에서 통일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하나의 집단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굳이 영토적 통합은 필요치 않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한다. 또 오늘날 세상의 흐름, 특히 다문화주의와 지역통합의 움직임 등을 감안할 때 통일의 당위성으로서 \'단일민족의 신화\'를 제시하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다.
이러한 고찰은 북방정책이 왜 지금까지와 같은 변화의 궤적―즉통일정책 및 외교·안보정책에서 국가전략으로의 변화를 밟아 왔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추구하게 될 정책적 방향성 까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영토적 통합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의 탈피는 향후 북방정책이 대북·통일정책 혹은 외교·안보정책의 성격을 갖기 보다는 \'국가전략\'적 성격을 추구하게 할 것이며, 그 목표는 바로 \'세계 일등적 지위\'의 획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그 \'세계 일등적 지위\'를 성취하게 된다면, 우리가 성취한 \'세계 일등적 지위\'의 모습이 어떠한 것이든, 우리가 굳이 북한과의 영토적 통합에 매달릴 필요는 없게 될 것이다. 그러한 성취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은 물론 우리를 둘러싼 많은 국가들과의 협력으로 가능할 것이며, 그러한 목표를 향해 협력 해 나아가는 길에 통일이 벼락 같이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그 모습이 꼭 \'영토적 통합\' 그 하나일 필요 또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는 통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