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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타임스][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역사를 아우르는 복합적 공간… 경제·문화 영토확장의 寶庫

글쓴이 : HK담당자

등록일 : 2021-02-05 12:00:00

조회수 : 1,3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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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반도를 향한 한 걸음…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② 대한민국은 왜 북방을 꿈꾸는가 (1)

2021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의 연구진이 한 해 동안 디지털타임스 지면에 담을 주제로 택한 것은 \'북방의 정체성\'이다. 즉 \'북방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북방은 어떠한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방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들이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우리 연구진들은 북방과 관련하여 \'외교, 문화, 안보, 역사, 도시\'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나갈 것이다. 필자가 담당한 것은 \'외교\' 분야이며, 앞으로 8회에 걸쳐 북방과 관련된 한국 외교의 여러 이야기들을 전달할 것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세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그에 답함으로써 향후 전개될 논의의 초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북방이란 무엇인가?\'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북방\'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어떤 생각\' 혹은 \'무엇\'을 떠올리시는가?

가장 단순하게는 지리적 방향성으로서의 북쪽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북방은 북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역학에서는 북쪽 방향으로 해자축(亥子丑)의 방위를 지칭한다. 해(亥)는 정북보다 약간 서쪽의 방위를 관장하고, 자(子)는 정북을 관장하고, 축(丑)은 정북보다 약간 동쪽의 방위를 관장한다. 곧 정북을 중심으로 하여 각각 30도씩의 방위의 범위를 북방이라고 지칭한다.

지리·역학적 개념에 더하여 정책적 개념으로서의 북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북방정책\' 혹은 \'신북방정책\' 할 때의 북방이다. \'정책\'과 결합되었을 때의 \'북방\'은 좀 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며, 노태우 정부 시기 \'북방정책\'의 출범 이후 정책용어로서의 \'북방\'이 의미하는 바는 꾸준히 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용어를 살펴보자. 북방정책의 태동기에 국립외교원의 전신인 외교안보연구원은 "북방외교는 한국 북쪽에 있는 소련, 중국, 북한과 △개별적으로 △2개국과 동시에 △혹은 중·소·북한과 동시에 관계개선을 구하는 외교정책과 외교행위를 뜻함"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때의 북방은 중국과 소련, 북한을 지칭하는 매우 한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세대가 지난 2017년의 북방은 훨씬 많은 국가, 넓은 지역을 지칭한다. \'신북방정책\'은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 형성\'의 한 부분이다. 신북방정책의 주요 추진주체라고 할 수 있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규정하고 있는 신북방대상국가는 \'러시아, 몰도바, 몽골,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조지아, 중국(동북3성),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가나다 순)\'의 14개국이며, 정책목표로 제시된 16대 중점과제는 \'초국경 경제협력 추진에서 다각적인 외교협력 기반 조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대상 국가가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책의 목적성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88년이나 2017년의 두 경우 모두 \'북방\'의 대상이 무엇인지, \'정책\'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밝히고 있지만, \'북방정책\'이라는 용어에서 사용되는 \'북방\'과 \'정책\'이라는 단어가 어떤 공간적 확정성과 정책적 완결성을 갖는다고 규정짓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 같다. 그것은 우리가 사용해온 \'북방\'이라는 단어가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며, \'정책\'과의 결합은 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북방\'은 지리적으로 북쪽에 위치한 국가들을 가리키기도 하고, 북한과 관계있는 국가들을 가리키기도 하며, 구 공산권 국가들을 지칭하거나, 한반도 북쪽의 모든 땅들, 즉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저 멀리 중앙아시아와 동유럽까지를 포함하기도 한다. 북방과 결합한 \'정책\'은 외교, 안보, 통일, 경제, 문화의 다양한 영역을 포괄한다. 이 중 어느 특정한 지역, 특정한 목적만을 \'북방\' 혹은 \'정책\'으로 규정하기에는 \'북방정책\'이 갖는 함의가 너무 크고, 전술한 모든 것을 다 포괄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적 역량이 미치지 못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우리에게 북방이 무척이나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렴풋한 것이고 희미한 것일 뿐,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북방과 북방정책이란 우리가 어렴풋이 이해하는 확립되지 않은 개념이고,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이며, 바라보는 비전이지만, 아직 어떤 구체적 실체로서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북방정책\'의 규정은 인식의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많은 유의미한 저작을 남긴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많은 사람들이 아렌트를 정치 철학자로 기억하고 있기도 하지만, 아렌트 본인은 자신을 정치 철학자로 부르는 것을 거절했으며, 스스로를 정치 이론가로 지칭하였다.)는 "어느 것이 나타나는 한 그것은 단일의 형태로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누군가에 의해 지각되기 마련"이라고 주장하였다.

북방을 규정함에 있어 아렌트의 방식을 빌려 쓰자면 북방이란 \'인식의 맥락에서 우리가 규정하는 공간\'이며 이 \'규정된 공간\'은 단일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동시에 우리의 행동을 구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북방정책 및 그와 관련된 연구에서 의미하는 \'북방\'이란 지리적으로 고정된 어떤 공간이라기보다는 \'화자의 목적과 의도, 연관된 의제 및 이슈\'에 따라 그 의미가 구성되고 변화되어 온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상상의(imagined)\' 영역이다. 또한 정책과 결합했을 때 그 의미는 더욱 다양한 함의를 갖게 되고, 매우 \'가변적(variable)\'이며 \'구성적(constructive)\'인 성격을 갖는다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확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과도하게 단순화시켜 이야기하자면 \'북방\'과 \'북방정책\'은 결국 생각하는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 기획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상상으로서의 북방을 실체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음으로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는 왜 북방을 꿈꾸는가?\' 이다. 북방과 북방정책은 왜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었는가? 우리는 왜 북방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가슴이 설레고 웅대해지며 격정적이 되는 것일까? 북방을 향한 우리의 지향성은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필자는 북방을 향한 우리의 갈망과 지향성의 근원으로서 세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북방\'에 대한 우리의 근원적 그리움을 들 수 있다. \'북방을 꿈꾸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가 보여주는 상고시대 한국사의 웅혼한 모습에서부터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로 연결되어지는 잃어버린 고토에 대한 향수, 그리고 대륙에 대한 갈망이 우리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접근은 과거에 기반을 둔 것이다. 역사적 기록에 근거한 그리움의 투사로서 잃어버린 고토(古土)에 대한 향수와 우리 핏속에 흐르고 있다고 주장되어지곤 하는, 혹은 그렇게 믿고 있는, 북방 DNA의 존재가 우리로 하여금 북방을 꿈꾸게 한다.

둘째는 현재적이며 현실적 관점에서의 북방에 대한 갈망이다. 2021년 현재, 한국 사람과 한국제품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찾을 수 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우리 경제활동의 영토는 미주대륙을 시발로 유럽과 중남미를 거쳐 중동과 아시아까지 전 세계에 걸쳐 있다. 그 중 상대적으로 미약하다고 여겨지는 북방으로까지 우리의 경제영토를 확장함으로써 잃어버린 고토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현재의 경제영토를 넓히고자 하는 열망이다.

셋째는 미래를 꿈꾸는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통일에 대한 희구와 다시 하나 된 한민족에 대한 소망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말이 흘러간 관용구처럼 취급되어지는 오늘날이지만, 언젠가 우리는 통일된 한반도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며, 통일과 그 이후를 위해서 북방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 없는 통일이란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 뿐 아니라, 통일 이후의 안정된 국가, 평화로운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홍익인간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북방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과거는 기억을 통해 현재에 재현되고, 미래는 기대를 통해 우리의 삶에 현재화된다."

북방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세 측면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대륙을 말달리던 활달한 기상과 호방함이 현재 우리가 이룩한 경제적 성장과 세계적 존재감으로 재현되었으며, 다시 하나 된 한민족과 한반도에 대한 기대가 우리로 하여금 북방을 꿈꾸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은 \'꿈은 실현될 것인가?\'이다. 앞서 던진 두 개의 질문, \'북방이란 무엇인가?\'와 \'우리는 왜 북방을 꿈꾸는가?\'에 대한 답에서 찾을 수 있듯이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북방을 꿈꾼다. 그 꿈은 경제적 번영일 수도 있고, 통일일 수도 있으며, 한류의 융성을 통한 문화영토의 확장일 수도 있다. 우리가 꿈꾸는 북방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우리가 \'꿈은 실현 된다\'라는 믿음을 갖고 그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꿈의 실현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국가와 민족의 힘과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까운 과거, 우리 민족은 원치 않는 식민의 시절을 견뎌내야 했고, 광복 이후에는 분단과 전쟁을 겪어야 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 내동댕이쳐진 국민은 헐벗고 가난했으며 우리 국가의 위상은 말 그대로 \'약하고 작은 나라, 약소국\'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더 이상 우리를 \'약소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의 의식과 비전 또한 그 너머에 있다. 이제 우리에게 훨씬 익숙한 표현은 중견국이다. 중견국 외교, 소프트파워, 중강국, 작지만 강한 나라, 가치외교…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이렇게 부를 뿐만 아니라 타자의 인식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인식과 위상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목표점과 비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통일 한반도와 그 너머를 향한 거대한 비전(Grand Vision)을 갖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대전략(Grand Strategy)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북방에의 길 위에서 딛는 통일 그 너머를 향한 한 걸음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제 모두 함께 그 오롯한 한 걸음을 내딛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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