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외교이슈, 윤석열 대통령 ‘이란 주적 발언’이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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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
2023-02-17 10:14:14
조회수 :
2,8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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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미군 철수로 안보 공백… 이란 막기 위해 주적 이스라엘과도 손잡아
한-이란, 경제 협력 파트너였지만 국제 사회 제재 후 양국 관계 변곡점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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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모든 행위에는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다. 특히 국제 외교 무대에서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국익이 판가름난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중동 정세와 국제정치적 역학 관계는 매우 복잡하며 그 역동성 또한 시기마다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에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실제 UAE와 이란은 과거에는 정치적 긴장감이 있었지만, 경제·사회적으로는 이미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앞서 이란이 단지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에 벗어나고 미국과 적대적이라는 이유로 이란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은 이상적이지 않다. 한-이란 양국 관계도 국제 사회가 이란에 제재를 가한 이후 변곡점을 맞았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한다. 한국의 대(對)중동 정책은 미국의 일방적인 외교 정책에 편승하기보다는 우리만의 전략적 가치와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관점에서 전략을 재수립해야 한다.
이슬람 종파 분쟁 속에 숨겨진 패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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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주도로 이란 핵 합의(JCPOA)가 체결되면서 이란이 정상 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되자, 종파 간 분쟁이 현실 정치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란이 정상 국가화한다면 사우디를 비롯한 왕정국가들은 정통성의 위기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선거를 치르고 형식상으로라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이란과 대비되는 중세적 왕정 체제를 지킬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는 인구, 경제 잠재력, 우수한 인적·천연 자원을 지닌 이란이 중동 내 패권을 넘볼 것을 우려했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고 세력을 규합하고자 사우디는 걸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했고, 이러한 연합에 상징성을 부여하고자 종교를 정치화하기 시작했다. 소위 ‘시아파 초승달 지역(Shiite Crescent)’ 대응 프레임이었다. 이러한 담론을 펼친 건 2004년 요르단 압둘라(Abdullah) 국왕이 시초다. 그는 “베이루트에서 페르시아만까지 이르는 광범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 국가들이 규합해 수니파 걸프 국가들을 포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 이라크 총선에 이란이 개입하는 것을 우려하는 입장 표명이었을 뿐 실질적인 대응은 없었다. 하지만 이란의 정상화를 앞두고 이러한 담론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에 이어 등장한 공화당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고, 결국 사우디의 바람대로 이란 핵 합의에서 미국이 탈퇴하기에 이른다.
중동 지역 동맹 구조, 역동적 변모 보여
더불어 중동 지역의 동맹 구조가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모습도 보인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역내 패권 국가로 등극할 우려가 생기자, 사우디는 이란과 외교 관계를 재개하고 상호 방문을 확대한 바 있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 내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고 이란과 이라크가 지속적으로 가까워지자 사우디는 이란과 다시금 갈등 모드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이란 핵 협상 체결 이후 극에 달하면서 사우디로 하여금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선택’을 하게 만든다.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이다. 2020년 9월 15일, UAE와 바레인은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게 된다. 걸프 국가 중에는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협정이며, 사우디의 묵인 내지는 승인 없이 성사될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만큼 사우디 입장에서는 아랍 전체의 주적인 이스라엘과 손을 잡아야 할 만큼 이란의 확장주의 정책이 큰 위협으로 다가온 셈이다. 특히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등지에서 철수하자 사우디 입장에서는 미국의 안보 공백을 메울 파트너가 필요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과거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가 희망했듯이 “이란에 대한 우려를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란이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기 이전에는 한-이란 간 경제 협력은 상호 호혜적이었다. 이란은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제공했고, 이후에도 꾸준하게 한국과 경제협력을 추진하며 한국의 주요 에너지원 제공자이자 중동의 큰 시장 역할을 했다. 미국의 본격적인 대이란 제재 이전까지 이란과 한국과의 교역은 매우 활발하게 이뤄졌으며, 한국은 이란의 중요한 아시아 파트너 국가로 인식됐다.
인구 80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이란 시장에서 유럽과 서방 기업들이 빠져나간 뒤, 한국 제품은 지난 10여 년 동안 전자·자동차·화장품·의료 분야 등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어쩌면 미국의 대이란 제재 속에서 오랫동안 실익을 얻은 건 한국일지 모른다. 경제협력의 결과로 한국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이란의 주요 은행인 멜라트(Mellat)은행 서울 지점을 유치했고, 이후 7조6000억원의 이란 원유 대금이 한국은행과 멜라트은행에 예치됐다.
다만 한국과 이란의 관계는 비교적 최근 벌어진 이슈로 인해 변곡점을 맞는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후 이 원유 대금은 제재 스냅백(snap-back)으로 인해 동결되며 양국 관계에 악재로 작용한다. 2021년 이란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공해상에서 한국의 케미호를 나포한 바 있는데, 미국에 본부를 둔 아랍 전문 미디어인 알-모니터(Al-Monitor)는 이 사건이 이란 자금 동결과 결부돼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국제정치로 인해 한국과 이란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꼬여버렸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 UAE 방문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이다.
중동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는 지역
중동 지역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는 지역이며, 각 국가의 의지와 실리가 명분을 종종 이기는 지역이다. 이러한 특수성과 역동성을 고려하고 그 복합적인 관계를 면밀히 관찰해야 균형점을 찾고 실리 외교를 펼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윤 대통령의 외교적 수사는 매우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한국은 최대 에너지 자원 공급처이자 건설·플랜트 수주시장으로서 중동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성공적 사업수행을 위한 지역의 정치·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이해와 포용성 확대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이처럼 편향된 대중동 인식은 중동 자체보다는 4강 중심의 외교나 미국을 위시한 동맹 중심의 대외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기존의 전통적인 외교만 답습하거나 서방 세계가 짜놓은 진영 외교에만 매몰된다면 복잡한 역학 관계의 중동 외교에서 한계를 보일 수 있다. 정상의 외교적 수사가 얼마나 정치적 무게감을 갖는지 이번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만의 전략적 가치와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관점에서 모든 협력과 동맹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 오종진 정치학 박사·한국외국어대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 교수 jin93@hanmail.net·이주성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센터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