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 축구공이 쏘아 올린 중국몽의 불안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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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
2022-12-07 14:37:46
조회수 :
2,90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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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에서 진행되고 있는 월드컵 열기가 뜨겁다. 사막의 모래 열풍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는 대륙 너머 중난하이의 구중궁궐에서 펼쳐지는 중국 정치에 예상치 못한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 정부가 3년 동안 완강하게 유지해 온 제로 코로나(淸零) 정책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발이 확산하면서 3연임에 갓 시동을 건 시진핑 주석의 앞날에 불안한 장막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발발 이후 3년 동안 중국은 무관용 코로나 정책을 유지해 왔다. 이로 말미암아 중국인이 감당한 심리적·경제적·사회적 결과는 참담했다. \'인민의 안전\'을 명분으로 단행된 국경 폐쇄로 말미암은 장기간의 국제적 고립, 상하이·톈진·선전·선양·시안·창춘 등 대도시 곳곳에서 발생한 빈번한 장기 도시 봉쇄, 입국자에 대한 최장 6주 격리, 교육기관 폐쇄로 좁은 기숙사 방에 장기 격리된 학생들의 트라우마, 실직과 폐업으로 경제적 약자들이 감내해야 할 궁핍의 고통은 오롯이 인민만이 감당해야 할 책무 영역으로 국한됐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에서 수만 관객이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밀착한 채 자국 팀을 응원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전파를 타면서 무관용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폭발했다. 처음 온라인에서 시작된 정부 정책 희화화와 방역 정책 완화 요구는 상하이·광둥·우루무치를 비롯한 다수 지역에서 성난 군중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집단시위 양상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시진핑 주석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놀란 정부는 시위에 참석한 다수의 시민을 연행하고, 이를 취재하던 외신기자까지 감금했다. 곧이어 불특정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검문·검색이 자행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검열이 강화되고 있다.
축구는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단체스포츠 종목 가운데 하나고, 월드컵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를 이용한 기업 월드컵 마케팅 또한 진화하고 있다. 유통과 부동산으로 유명한 완다(萬達), 가전제품 기업 하이신(海信), 유제품 기업 멍뉴(蒙牛), 스마트폰 기업 비보(Vivo) 등 중국 굴지의 기업들은 월드컵을 통해 자사 브랜드 가치를 향상하는 홍보 작업에 명운을 걸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 영향으로 스포츠가 단순히 운동과 경제 영역에만 머무르던 시기는 오래전에 종료됐다.
사실 중국에서 월드컵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시진핑 자신이다. 중화민족 부흥을 기치로 \'중국몽\'을 주창한 시진핑은 중국몽이라는 메인 식단에 애피타이저로 \'축구몽\'을 더했다.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고, 월드컵 경기를 개최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기를 바란다는 시진핑의 원대한 야심에 중국 축구계와 기업들은 자국 프로축구 및 국가대표 실력 향상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다수의 외국 선수까지 귀화시켰다. 하지만 중국 축구 대표팀은 올해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중국의 \'축구 굴기\'를 좌절시켰다.
사막에서 쏘아 올려진 축구공은 이제 축구몽의 허상을 넘어 중국몽의 실체를 뒤흔들 조짐으로 비화하고 있다. 마스크 없는 수만 관중의 외침은 그동안 제로 코로나 정책의 당위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온 중국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방역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발동시켰다. 왜 중국인은 집 안에 머물러야 하는지, 왜 경기 침체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왜 핵산 검사를 지속하는지, 그 많은 핵산 검사 비용은 어디서 나오고 검사 장비 소비로 인한 정치적·경제적 수혜자는 누구인지 등 \'왜\'라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번 촉발되자 더 많은 의심을 양산하고 있다.
중국인의 \'탈(脫) 제로 코로나\' 시위에도 이번 반발이 중국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유는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 중국 정치체제 위협을 초래할 만한 도전은 중국 지식인과 중산층의 집단행동이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부유층과 함께 경제 성장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집단이다. 그 어느 국가보다 정권 도전 세력에 대한 처벌이 혹독한 중국에서 대규모 경제 위기와 같은 결정적 전환점이 도래하지 않는 한 이들이 과도한 위험을 무릅쓰고 정치체제에 도전할 이유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둘째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건 등 과거 집단적 정치 행위가 남긴 기억 유산이다. 비록 동인은 각각 달랐다 하더라도 두 사건이 중국 정치·경제·역사에 남긴 공포와 두려움의 기억이 아직 중국인 뇌리에 뿌리 깊이 남아 있다. 이는 오늘을 사는 중국인이 정치적 변화보다 경제 성장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중요한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셋째 현재 중국은 사회 약자인 노동자, 농민, 농민공 등이 체제에 도전할 만한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치 변동을 이끌기 위해서는 전국적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도전이 선행돼야 하는데 현 중국 정부의 감시·통제 시스템은 조직적인 저항 세력이 장기적으로 존재할 만한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제약에도 현재 발생하는 산발적 시위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띠고 있다. 우선 현재의 시위가 완전한 정치체제 개편이나 서구적 개념의 자유·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님에도 이 정도 저강도 시위를 수용할 여유조차 없다는 시진핑 정부의 속살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는 3연임에 시동을 건 시진핑 정부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온 제로 코로나 정책의 변화가 불러올 리스크에 대한 지도부 우려와 두려움이 그만큼 높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얼마 전에 폐막한 20차 당대회 결과는 덩샤오핑 이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돼 온 부분적 정치 개혁이 전혀 제도화 영역으로 흡수되지 못했음을 보여 줬다. 그 결과 소수 권력 의지와 욕망에 정치 시스템 전체가 종속되는 취약함을 드러냈다. 이는 권력 유지에 우호적이지 않은 대내외적 정치 환경이 조성됐을 때 이를 돌파하기 위해 무모한 외교 정책을 구사한 세계사적 선례가 중국에서도 반복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진핑은 자신이 제시한 중국몽 실현을 위해 국내 정치 안정을 최우선으로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제로 코로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억누를수록 시진핑이 추구하는 중화민족 부흥의 실체에 대한 중국인들의 의구심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반면에 자신이 정치적으로 강조해 온 방역 정책의 급격한 변화는 중국 의료 시스템에 과부하를 초래, 공산당의 지도력 실추로 이어질 수 있다. 3연임과 함께 중국몽 실현 장도에 들어선 시진핑 정부의 지도력이 본격적인 실험대에 올랐다.
asymmetryir@naver.com
○…함명식 교수는 중국 지린대 공공외교학원 교수 겸 한국외대 HK+ 국가전략사업단 공동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외대 문학사, 연세대 정치학 석사, 미국 버지니아대 박사과정을 거쳐 중국 지린대에서 국제관계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중 관계와 미-중 패권 경쟁, 중국 동아시아 외교가 주 연구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