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미증유의 'G0' 시대, 세계시장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중국 경제, 딜레마를 기회로 만들려면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23-02-16 14:35:31
조회수 :
2,980회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23-02-16 14:35:31
조회수 : 2,980회
[영남일보-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공동기획](2)
지난해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에너지 위기와 식량 위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높은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지구촌 곳곳에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는 동시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격화되면서 국제 리더십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와중에 새롭게 대두한 강대국 중심의 각자도생의 양태는 탈세계화를 부추기는 모습이다. 대외 개방형 경제인 한국이 세계 시장 접근법을 새롭게 수립해야 할 이유다. 이에 영남일보는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과 10회에 걸쳐 달라진 세계 질서를 진단하고,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새로운 지역별 맞춤형 전략을 고민해 봤다.<편집자주>
박한진 KOTRA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외교통상학부 객원강의교수 |
한국만 \'안미경중\' 했던 게 아니다. 여러 아시아 국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가 당연시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잠재적 리스크로 변했다. 두 강대국이 갈등 국면에 빠지면서부터다. 더 우려되는 것은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한 강자가 없다는 현실(G0)이다.
\'G0\' 시대의 특징적 현상은 탈세계화다. 지금까지는 미국보다 중국이 느끼는 위기감이 더 커 보인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경제를 키우고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세계화의 이득을 중국이 가장 많이 봤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중국은 탈세계화로 대변되는 디커플링 상황을 어떡해서든 벗어나려는 데 대외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런 중국에 한국은 수출 상품 네 개 중 하나를 보낸다. 해외시장에 관한 한, 미국보다 중국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한국의 딜레마가 커졌다.
미국은 2018년부터 대중국 압박을 강화해왔다. 첨단기술산업 분야의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재편되면서 미·중 주도권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 등으로 동맹국과 우방국을 연결해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코로나 이후 해외 생산 기지의 분산 배치, 제조업의 본국 배치(리쇼어링), 니어쇼어링 등과 맞물려 글로벌 경제의 블록화를 가속하고 있다. 중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중국의 대응 전략
첫째 가치사슬의 재편이다. 과거 중국은 미국발 원천기술과 설비를 이용해 생산한 상품을 세계 시장에 수출하고 중국에서도 사용해왔다. 이제는 중국의 기술력을 키워 만든 제품을 국내에서도 쓰고 해외에 수출도 하겠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른바 \'반도체 굴기\' 전략은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미래기술 패권을 쥐겠다는 전략이다. 대외적으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발효(2022년 1월)를 통해 역내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대내적으로 공급망의 국산화를 통해 미국을 배제한 중국 중심의 가치사슬(GVC) 구축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둘째 디지털 경제발전이다. 산업 측면에서 디지털 경제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는 빅데이터 센터, 5G 네트워크, AI(인공지능), 산업 인터넷, 전기차 충전소, 고속철도 및 도시철도, 특고압 송전 설비 등이 포함된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역 간 불균형을 방어하기 위해 디지털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동수서산(東數西算)\'도 조성하고 있다.
경제발전 수준이 높은 동부 지역의 데이터(數據)를 서부 내륙지역으로 전송해 처리하는 계획이다. 이밖에 기후 위기 대응 주도권을 잡기 위해 탄소 저감 제도 구축을 통한 녹색산업 육성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경제 정상화에 집중
셋째 내수시장 육성이다. 경제정책 측면에서 중국은 수출과 투자보다는 내수 회복을 통한 경제 정상화에 집중한다. 2020년 이후 내수 회복과 신성장 동력 발굴에 중심을 둔 쌍순환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중국 국무원이 공식 발표한 경제안정화 패키지 정책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기 하락세를 회복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조치다. 여기에는 재정과 금융, 투자, 식량과 에너지 안보, 공급망 보장 등의 다양한 경기 부양 조치가 포함됐다.
넷째 소비시장 세분화다. 중국은 시장 측면에서 인구가 감소하면서 구조가 변하고 있고, 소비계층이 분화하고 있다. 중산층의 증가, 여성 소비시장과 실버경제의 확대, 젊은(Z) 세대의 부상 등으로 소비계층이 세분화하면서 재편되고 있다. 다양한 계층과 소비 트렌드에 맞는 정책 조치들이 나오면서 소비시장이 질적으로 양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은 온라인 플랫폼의 급팽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GO시대 중국 시장 활용법
G0 시대의 중국은 종래 국제적인 평화 무드 속에 기업들의 \'차이나 붐\'이 일어나던 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중국 경제와 시장을 어떻게 관찰하고 활용할 것인가?
첫째 현재와 미래의 경제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표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과거엔 제조업 부문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실적과 수출 증가 속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액과 부동산 판매량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소매판매액과 물가지수, 제조업 투자, 신경제 영역이 핵심 관찰 지표로 떠올랐다. 중국의 정책 중점 방향이 바뀌면 관찰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둘째 새로운 성장 포인트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코로나19 여파와 탈세계화 움직임에 따라 경제 회복 여부와 성장률(GDP) 성적표가 불안하다. 경제 예측도 어렵다. 비즈니스 활동과 소비, 생산과 투자는 물론이고 물류와 공급망도 안심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급성장한 O2O(온· 오프라인 연결) 비즈니스 같은 신경제 영역은 앞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비즈니스 기회가 생겨난다는 의미다.
◆소비 촉진 정책 주시해야
셋째 지역별로 정책 조치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 지방의 소비 촉진 정책 흐름을 주시한다면 내수시장 세분화 전략에 참고가 될 수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이 더욱 심화하는 양상으로 가지 않으려고 \'중·미 경쟁\'이라는 말을 좀처럼 쓰지 않으려는 듯하다. 하지만 미래 미·중 간 경쟁의 결판은 경제 능력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최근 중국 경제가 좋지 않지만, 미국도 낙관만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미국을 추월한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고 밝혀 왔지만, 현실적으로 국제 사회가 계속 양국을 비교하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향후 글로벌 차원의 영향력도 결정될 것이라고 본다.
넷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경제산업 정책 조정은 그 변화의 배경과 지향점 차원에서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 범위를 판단할 수 있고 대응책도 더 잘 마련할 수 있다.
박한진 교수 제공. |
박한진 교수 제공. |
한국과 중국은 수교를 통해 경제교류를 공식화한 지 30년이 지났다. 교역과 투자 규모는 유례없이 팽창했지만, 이제는 변곡점에 이르렀다. [그림1]에서 보듯 사곡(Dead valley) 지점에 와 있는 것이다. 어떤 기업은 중국진출을 축소하거나 탈중국하려는 움직임이고 다른 기업은 중국 내수시장 진출을 위해 위축 후 재확장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전자는 제3국 수출지향형 해외 진출이고 후자는 현지 내수시장 지향형이다. 사곡 시기에는 기업별로 해외 진출의 목적과 생산(취급) 품목의 특성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림2]
마지막으로 이제는 해외 진출기업도 지정학적 변수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하지만 기업의 해외 경영은 지정학적 문제를 넘어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한 영역이다.
중국은 정부 정책이 시장을 만들어내는 정책시(政策市)의 특성이 강하다. 정책의 배경과 지향점, 속도와 방향을 잘 관찰한다면 떠오르는 기회를 찾아낼 수 있다. 우리가 잘하는 영역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쓰기보다는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자는 얘기다.
◆탈중국보다 글로벌 재배치 관점 접근
한국 사회는 꽤 오랜 기간을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두고 논란과 갈등을 빚어왔다. 세계화 시대에는 \'안미경중\'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과정은 마키아벨리적인 현실주의 국제정치가 대세라고 한다. 즉 가치나 이념을 중시하지 않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는 의미다.
미국의 투자전략가인 마르코 파픽이 자신의 저서 \'지정학적 알파\'에서 한국에 조언한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 양국 모두가 한국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한국은 이를 잘 이용한다면 중국과 무역을 하는데,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고 미국과의 동맹 관계도 유지할 수 있다."
이 같은 판단을 외교와 경제교류의 현장에 매끄럽게 적용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중국 모두와 서로 다른 차원의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이 유리하다. 이분법적인 \'탈중국\'이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글로벌 재배치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글=박한진 한국외대 객원교수
정리=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